
밥
줄거리
여고생 무용수 소희는 어느 날, 이웃집에서 굶주림 끝에 생을 마감한 모녀의 시신을 발견한다. 방 안에 남겨진 식지 않은 생활의 흔적들 앞에서 소희는 말을 잃고, 죽음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아직 떠나지 못한 시간처럼 그녀의 몸에 스며든다. 애도의 언어를 알지 못한 소희는, 몸이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방식으로 그들을 위로하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사찰로 향한다. 법당에서 시작된 천도재 공양춤은 단순한 위령의 형식을 넘어선다. 북소리와 염불 사이에서 소희의 몸은 점차 일상의 시간으로부터 이탈하고, 춤은 기도가 되고, 기도는 기억의 의식으로 확장된다. 죽은 이를 보내기 위한 동작 하나하나 속에서, 소희는 자신이 살아온 시간과 알지 못했던 죽음의 시간들을 동시에 건너기 시작한다. 거룩한 창작무의 흐름 속에서 그녀의 몸은 점차 비워지고, 마침내 해탈에 가까운 고요로 이끌린다. 그 순간, 소희는 1980년 5월 광주항쟁 당시의 소년 시민군의 영혼과 마주한다. 소년은 노벨문학상 수상작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동호를 닮은 형상으로, 말없이 그녀를 응시한다. 언어 대신 시선과 호흡으로 건네지는 부름에 이끌려, 소희는 소년의 손짓을 따라 사찰의 경계를 넘어선다. 경내와 경외의 세계가 무너진 자리에서, 시간의 막이 찢어진다. 소희가 도착한 곳은 1980년 5월의 광주, 시민들의 격렬한 저항이 이어지던 충장로 거리다. 그러나 그곳에 존재하는 이들은 더 이상 현생의 사람들이 아니다. 인간의 외형을 한 휴머노이드 로봇 계엄군은 명령에 복종하는 폭력의 비인간성을 상징하고, 그녀의 앞을 가로막는 야차들은 억압과 공포가 응축된 화신으로 소희를 집요하게 추격한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노동자와 시민들 역시 모두, 그날 그곳에 남겨진 영혼들이다. 이 도시는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영혼의 무대다. 소희는 야차의 공격과 방해에 맞서, 오직 춤으로 저항한다. 창작무의 몸짓은 방어가 되고, 공격이 되며, 잊히지 않으려는 기억의 무기가 된다. 그녀의 발걸음은 총성 사이를 가르고, 팔의 선은 억압의 장벽을 밀어낸다. 마침내 소년 시민군에게 다가가지만, 광주천 교각 아래에서 총알이 떨어지는 순간, 소년은 대검을 든 계엄군에게 치명상을 입는다. 소희는 그를 살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병원까지 옮기지만, 소년은 미소를 남긴 채 조용히 숨을 거둔다. 그의 죽음은 비극이면서도, 끝내 기록되지 못한 수많은 이름 없는 죽음들의 얼굴이다. 다시 현재로 돌아온 소희는, 죽은 영혼을 위한 마지막 천도재를 혼신의 힘을 다해 마친 뒤 법당 안에서 쓰러진다. 그리고 마침내, 굶주림 속에서 생을 마감한 모녀의 영혼을 극락으로 떠나보낸다. 과거와 현재, 개인의 죽음과 집단의 희생이 하나의 춤으로 이어지는 순간, 소희의 몸은 기억이 오가는 통로가 된다. 이 영화는 묻는다. 죽은 자를 잊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기록되지 못한 폭력의 시대를 건너, 기억은 어떻게 저항이 되는가. 그리고 예술은, 말 없는 영혼들을 어떻게 다시 이 세계로 불러오는가. 소희의 춤은 대답 대신 몸으로 남는다. 그것은 위령이자 기록이며, 침묵에 맞서는 가장 오래된 언어다.
감독/주요 출연
박기복
감독
원일스님
배우
박하이
배우
박기복
배우
강연지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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