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코(2026)는 얼핏 보면 모험담이다. 하늘을 나는 소년이 있고, 그를 돕는 친구가 있고, 세상을 뒤흔드는 사건이 벌어진다. 비행을 하면 안됐던 아르코와 작별을 배우지 못한 아이리스, 그리고 집념에 돌아버린 무지개 요정 음모론자 3인방은 결국(당연히) 재앙을 불러온다. 뻔한 결과다. 하지 말라는 일을 굳이 하고, 놓아줘야 할 것을 놓지 못하고, 믿고 싶은 것만 끝까지 믿는다. 재앙이 더 빨리 오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사람들은 흔히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 과정을 싸잡아 실패라 부른다. 하지만 시간축을 늘리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당시에는 망했다고 생각했던 일이 몇 년 뒤에는 전환점으로 남기도 하고, 죽을 만큼 후회했던 선택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경우도 있다. 시간을 견뎌낸 뒤에야 비로소 이름이 바뀌는 사건들이 있다.
영화의 인물들도 그렇다. 아르코는 비행하지 않았어야 했다. 하지만 끝내 비행한다. 아이리스는 작별을 배워야 했다. 하지만 끝내 놓지 못한다. 음모론자들은 적당한 선에서 포기했어야 했다. 하지만 끝까지 밀어붙인다. 모두가 그릇된 선택을 한다. 문제는 그 선택들이야말로 이들을 앞으로 움직이게 만든다는 점이다.

우리는 성장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더 빨리, 더 효율적으로 성장하는 방법을 찾는다. 실패를 줄이고, 시행착오를 건너뛰고, 모범답안에 가까운 길을 따라가려 한다. 그렇지만 정작 성장의 재료가 되는 것은 대부분 미련과 집착, 실수와 후회다.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는 사람은 상처도 입지 않지만, 멈춰 서 있다. 반대로 재앙을 불러오는 사람들은 대개 어리석고 고집스럽지만, 그 덕분에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지점까지 가버린다. 결국 스불재는 파괴라기보다 통과의례에 가깝다. 물론 사건은 실제로 많은 것을 망가뜨린다. 누군가는 상처 입고, 누군가는 잃고, 세상은 이전과 같지 않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라면 이 영화가 이렇게 따뜻한 얼굴을 하고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르코(2026)는 잘못을 없었던 일로 만들지 않는다. 인물들은 자신의 선택 때문에 대가를 치른다. 영화는 무너진 사람들을 향해 "왜 그랬냐"고 묻기보다, "다음으로 넘어가자"는 쪽에 더 가까이 선다. 멈춰 선 사람에게 시간은 의미를 바꿔주지 않는다. 앞으로 걸어간 사람만이, 지나온 시간을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 있다.

